살면서 알아가는 것들

63세

징검다리건너 2022. 5. 18. 14:44

 

  63세는 2022년 현재 내 나이(1960년생)이다.

노령 국민연금을 받는 만 62(1957년생~1960년생인 경우), 20191231일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농부의 직을 내려놓은 나이이기도 하다.

 

  나는 씨앗 채집을 하면 도토리가 자랄 만한 곳이면 도토리를, 잣나무가 자랄 만한 곳이면 잣을, 꽃씨가 자라기 좋은 곳에는 꽃씨를 뿌려주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문득 도토리에서 떡갈나무가 되기까지란 문구에서 10년이란 세월을 느꼈다. 혹 지금 뿌려 놓은 도토리가 도토리를 생산하는 떡갈나무를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급성이 갑자기 느껴지는 시점이 내게는 63세인 것이다.

 

  1997년 아버지는 그 63(당시 나38)에 문경에서 인천이란 곳에서 이주하여 도시생활을 시작하셨고 소일거리로 텃밭과 얼마간의 논농사로 삶을 이어가셨다. 당신들이 원한 은퇴생활의 근거지로의 도시가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씩 고향이 그립지 않으시냐는 물음에 ‘그립기는 하지뭐’라는 말끝에서 당신들의 마음을 읽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22년동안 반농민 반도시인으로 사시다가 아버지는 은퇴생활이자 삶을 도시에서 마감하셨다. 그중 마지막 약 10년은 자식과 함께 농사를 지으셨다. 일회용 씨앗과 비료농약으로 대변되는 산업농법에 대응하는 자연농법에 대한 관심으로 농사를 시작한 자식과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직업으로 삼았던 부모와 갈등은 필연이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배추밭과 자식의 배추밭은 장소가 달랐다. 그렇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버지가 몰래 비료를 주었기때문이었다. 당연히 자식의 퉁명스러운 한마디! 제 배추에 비료 주셨어요?’ 아버진비료 주지 않고 농사가 되는 줄 알지? 어림없다!’ 그러한 갈등 속에서도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형성된 말이 얼마나 자연적인지, 작물을 대하는 부모님의 몸짓에서 자연을 관찰하는 안목을 익혔다. 농사를 통하여 부모와 자식은 10여 년의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도시에서 전문직을 가진 자식이, 평생을 업으로 삼아온 농사의 꾼인 부모와 얼마만큼의 공감을 하였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농사철에는 거의 매일 아침 2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물을 가지고 고민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20224월 아버지는 63년간 살아오셨던 고향 선영으로 모셔졌다. 어쩌면 5남매를 키워내야 하는 아버지에게는 귀향이라기보다는 농작물을 등록금으로 만들어야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의 귀환은 아니었을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시기에 일생을 보냈던 농민들의 삶은 언제나 간당간당하였고 자식들을 도시에 내보내면서 도시에서의 은퇴생활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공교롭게도 63세인 나는 아버지의 치열한 삶을 보고 자라왔을지라도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가재잡이와 진달래 머루와 송이에 얽힌 추억으로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63세의 나이에 ‘더 이상 치열한 농사의 현장에서 살수 없어’ 라며 도시로 생활을 감행한 아버지와는 반대로 나는 ‘각박한 도시에서 일생을 끝내기는 싫어’라며 어린 시절의 시골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시골을 그리기만 할뿐 도시농부로 살고 있다.

 

   아버지는 시골환경은 좋을지라도 직업인으로서 농촌이 싫으신 것이고, 그 자식은 도시에서 전문직 직업인으로서는 좋을지라도 환경적인 면에서 도시가 싫어 시골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은퇴시점 63세 나이에. 아버지의 도시에서 삶의 마감이나 한참후에 자식의 시골에서의 삶의 마감은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